몇 년 전 나는 초등학교 동창들과 2주에 한 번씩 탁구 모임을 가졌습니다.
모임 초반에는 여러 명이 있었지만 점차 4명 정도의 소그룹으로 줄어들었다.
하지만 건강상의 이유로 한 사람이 몸이 좋지 않아 세 사람만 모이는 날도 많다.
이번 모임은 고향 친구들과 탁구를 칠 수 있어서 좋고, 탁구 솜씨도 비슷해서 아주 즐겁게 놀고 있습니다.
4명이 모이면 단식 경기는 2명이서 하고 복식 경기를 한다.
하지만 세 사람만 모이면 두 사람이 게임을 하고 한 사람이 심판을 합니다.
심판은 패자가 경기를 중단한 곳에서 경기를 합니다.
2시간 정도 신나게 훈련을 마치고 식당으로 이동해 점심을 먹고 수다를 떨다가 헤어진다.
충청남도 홍성군 갈산초등학교 동창회는 1995년 설립돼 30여명이 모였다.
정기모임을 몇 번 하다가 고향 동문들이 합동모임을 위해 서울로 올라왔다.
그날은 38년 만에 멤버를 만난 날이라 얼마나 기뻤는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듬해 나는 고향이 잘 보이는 곳에 가서 그를 만났다.
이들은 이를 기회로 삼아 수도권과 고향을 번갈아 가며 매년 합동회의를 했다.
동창모임이 이어지면서 세월이 흐르고 회원들은 어느새 80대가 되어 있었다.
이로 인해 건강이 좋지 않은 식구들이 늘었고, 세상을 떠나는 식구들도 늘어났다.
그래서 공식 상봉은 얼마 전에 해산됐다.
지금은 동문회 해산을 아쉬워하는 회원들이 한 달에 한 번 모여 점심을 먹고 담소를 나눈다.
취미에 따라 탁구모임, 동양화 스터디모임 등도 운영한다.
3회 모두 참석하시는 분들도 계시는데 저는 오찬모임과 탁구모임만 참석합니다.
어렸을 때 탁구가 흔하지 않아서 탁구를 배울 기회가 없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교사가 되기 위해 공부한 후 라켓을 몇 번 짧게 잡았습니다.
교수가 된 후 강의와 함께 연구 집필과 저서 발간으로 바빠 라켓을 마스터할 기회가 없었다.
그러다 60세가 되던 해 아내의 권유로 탁구를 배우기 시작했다.
회갑이 1년이 지난 2003년 2월, 나는 아내와 함께 탁구장에 갔다.
탁구 실력이 좋은 사람들 사이에서 치는 것이 부끄러웠지만 나보다 실력이 좋은 아내가 트레이닝 파트너가 되어주고 격려해줘서 용기를 내어 탁구대 앞에 섰다.
며칠 뒤 아내의 권유로 정식 회원가입을 하고 매일 20분씩 지도를 받았다.
쉐이크핸드 라켓을 원형 라켓으로 바꾸고 기본자세부터 차근차근 익혔습니다.
안내담당자는 1980년대 국가대표 선수로 활약하며 매우 친절하게 가르쳐준 황남숙이다.
트레이너에게 레슨을 받은 후 아내와 함께 트레이닝을 했습니다.
일주일에 두 번 걷겠다고 했는데 한 번만 걸을 수 있는 주가 있었고 전혀 걸을 수 없는 주가 있었습니다.
아내와 나는 건강 때문에 때때로 몇 주를 건너뛰었습니다.
하지만 여건이 허락하는 대로 탁구장에 나가 부지런히 훈련을 했다.
이렇게 몇 년을 지내다 보니 어느 정도 기본 스탠스에 익숙해졌고 상대 스탠스에 따라 공의 움직임과 방향을 조금씩 읽을 수 있게 됐다.
그 후로 아내와 게임을 하기도 하고 교회에 가서 교인들과 게임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몇 년 전 그의 아내는 시력에 문제가 있어 함께 탁구를 칠 수 없었습니다.
이렇게 몇 년 하다 보니 탁구 실력도 많이 떨어졌다.
몇 년 전 어느 초등학교 동창회에서 탁구 이야기가 나오고 탁구 모임이 시작됐다.
종로에 있는 탁구장에서 시작했는데 지금은 친구가 사는 아파트 단지의 탁구연습장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사태로 연습실도 정부 방침에 따라 개폐했다.
오늘은 쉬지 않고 문을 열 수 있어서 기쁩니다.
저는 이 모임에 참석할 때마다 행복합니다.
80대 고향 친구들이 모여서 탁구를 칠 수 있도록 건강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어르신들의 건강증진과 우의를 다지는 이 모임이 오래오래 이어지도록 모두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
(2003. 3. 9.)